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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복권

데타신 2012. 8. 8. 14:52

 


런던올림픽의 소식들로 우리의 새벽이 들썩이고 있다. 4년 마다 전세계를 울리고 웃기는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 그 영광과 환희의 축제에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참여했을까. 바로 64년전인 해방 이후인 1948년이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우리나라가 첫 출전한 당시의 올림픽이 열린 곳도 런던이었다.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에 우리 선수들이 출전하는 과정은 그렇게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1945년 해방된 그 해 조선체육회가 생기고 이듬해인 1946년부터 올림픽대책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이후 올림픽 참가 교섭을 벌였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들이 발목을 잡았던 것. 조선체육회 부회장이 IOC(국제올림픽위원회) 회원국이 되기 위해 신청서를 들고 가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지고, 선수선발을 둘러싸고 체육회 간부들이 총사표를 내고, 게다가 경비 부족분을 런던으로 전송하자는 국회 발의가 나오기까지 했다.


 

특히 해방 직후의 나라에서 70여명의 선수단을 런던에 보낸다는 것은 당시에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1인당 경비 2,000달러와 그 외 유니폼 값 15만원 등의 비용을 충당하기에 당시 한국의 재정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에 부딪힌 올림픽 참가의 희망의 빛이 된 것은 다름아닌 ‘복권’이었다. 던 올림픽에 파견할 대표선수단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올림픽후원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인 ‘제 14회 런던올림픽 후원권’을 발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1947년 12월 1일부터 만 두달 동안 단식으로 발매했던 후원권은 액면가 100원 짜리로 발행매수는 140만 장이었다. 당첨금은 1등의 경우 1백만 원 한 장, 2등은 50만 원 두 장, 그리고 3등은 1십만원 한 장이었다. 당시 집 한 채 값이 100만원 정도였으니, 그 가치가 꽤나 상당했었음을 알 수 있다. 복권 후면에 본권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 파견할 대표단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각 도와 서울시를 단위로 한 각 지구에서 발행함’이라고 명기된 발행 목적은 국민들의 성원으로 이어졌고, 복권은 거의 다 팔렸다. 그리고 그 이익으로 대표단은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복권의 시작은 이처럼 우리나라 대표선수단이 1948 런던올림픽에 참가하길 바라는 희망에서부터였다. 이후, 복권사업은 이재민 구호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후생복표, 산업부흥자금 및 사회복지자금 조성이 목적인 애국복권 등 성공적인 공익사업기금 조성을 위해 발행되어 사회발전에 공헌해오고 있다. 또한 최근 발행 1주년을 맞이한 연금복권520은 연금식 복권으로써 안정적인 당첨금 지급방식으로 국민들의 희망과 기대가 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복권에는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담겨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우리에게 복권이 주는 의미에 대한 국민 공모전도 열리고 있다. 복권과 얽힌 이야기가 있거나 복권에 담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괜찮겠다.

2012 복권에 담긴 희망 공모전 http://contest.bokgwon.or.kr/about/overview.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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