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목숨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일을 하게 마련이다. 목숨이 없는 돌처럼 가만히 있기만 하면 생명을 누릴 수가 없다. 들판을 나는 새는 먹이를 찾아 날개 짓을 해야 하고 바위에 붙어 있는 이끼도 먹이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뿌리를 내려야 한다.
생명을 누린다는 것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삶을 즐기려는 사람보다 삶을 보람 있게 하려는 사람이 일을 해야 참맛을 누릴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 삶은 쾌락의 소모가 아니라 노력의 선물임을 아는 사람은 일하는 보람에서 삶의 만족을 찾는다.
직장인은 일터에 나가 맡은 일을 부끄럼 없이 할 때 당당하고 떳떳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을 누릴 수 있어야 삶의 행복을 가까이 둘 수 있다. 행복은 일하는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달이 받는 봉급 때문에 직장에 나간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일터에서 보람을 찾기 어렵다. 월급 봉투에 목을 매고 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인생이 따분해지고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자기 스스로 학대하는 꼴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돈은 필요한 수단일 뿐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돈벌이가 삶의 목적인 사람의 끝은 험할 수밖에 없다. 돈이란 인생을 위해 필요할 것일 뿐 돈 때문에 인생이 저당잡혀서는 안 된다. 글서 현명한 직장인은 일하는 그 자체에서 보람을 찾는다.
삶의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은 분명하다. 재물의 양에 따라 행복의 서열이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재물 때문에 육친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것이 더심해져 소송까지 가는 경우를 보면 지나친 재물은 인간을 사납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물욕은 개미귀신처럼 인생을 함정으로 몰아간다.땀 흘린만큼 대가를 받는 것은 물욕이 아니다. 물욕은 턱없이 욕심을 부릴 때 빚어지는 허욕이자 허영이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텅 빈 방 안에 있다. 여기서의 텅 빈 방은 마음속을 말한다. 허실생백. 장자는 '텅 빈 방이 태양을 낳는다'고 했고 '텅 빈 것에서 즐거움이 나온다'고도 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청빈의 삶을 으뜸으로 삼았다.
청빈은 궁하게 사는 것을 뜻하는 것ㅇ이 아니다.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 곧 청빈이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물욕을 철저하게 다스리면서 검소하고 수수한 인생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곧 청빈이다. 남을 부휴하게 해 주기 위해 가신의 물욕을 다스리는 것이 곧 청빈이다.
한때 공직자의 재산 공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성실하게 신고하지 않고 별의별 구실을 앞세워 줄여서 공개한 공직자들을 천하에 어리석은 졸부이자 백성의 손가락질을 받는 탐관오리에 불과하다.
공직을 치부의 밑천으로 여긴다면 언제가는 된서리를 맞게 마련이다. 백성의 것을 훔친 자는 저승에 가서도 도둑 누명을 벗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물욕 탓에 망신을 당하는 자들을 보면 청빈의 길이야말로 인생을 편하게 한다는 진실을 깨우칠 수 있다. 그래서 '획죄어천이면 무소도'라고 했다. 즉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도 없다.'
성실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제일 무서워한다. 남은 속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없는 까닭이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남에게 너그럽다. 타인의 입장으로 돌아가 자신을 돌이켜 보는 마음은 너그럽다 넉넉한 마음은 자연스럽게 이웃을 얻고 그렇지 못한 마음은 타인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마련이다.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으로 인생을 누리면 물욕 따위에 인생이 메마르지 않는다. 마음의 문을 열고 타인을 껴안을려는 여유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이러한 이유가 곧 청빈의 정신을 이룬다.
